나에게는 편지로만 연락을 해온 십년지기 친구가 있습니다.
이름은 은숙이.
한참전...그녀와 나의 만남은 그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후 제가 취업한데는 언니가 살고 있는 고장 생활정보지 광고회사였습니다.
저와 함께 같이 입사한 동기가 한명 있더랬습니다.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분홍색 머리끈으로 묶은 그 친구는 나와 동갑으로 이름이 은숙이라고 하였고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이며 더불어 웃기도 잘 하고요.
집이 같은 방향이라 퇴근후 우리는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늘 전화상담과 광고수주..바쁜 일상중에서 우리의 대화는 사무실이외에 퇴근 후 버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뭏튼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며 마음을 터놓았고 아주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가끔 은숙이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상담등 지루하고 힘들던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으며 저에게 위안을 받을려고 했고 전 은숙이의 심정을 알기에 충분히 상담자 역활을 했삽니다.
물론 저도 힘들었던 부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은숙이와 서로 위안을 받았죠.
우리는 주소와 연락처를 교환했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선물 교환을 했습니다.
그러던중 은숙이의 갑작스런 가정사정으로 이사를 가고 어쩔수 없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답니다.
그동안 나누었던 우정을 뒤로하고 은숙이가 떠나는 날..
전 많은 눈물을 흘렸고..낮선 고장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이 더욱 힘든 회사생활이 될거라는 심셩으로 은숙이의 뒷모습만 슬프게 지켜보았답니다.
은숙이가 떠난 후...
우리의 편지 교환은 시작된 것입니다.
끊일 듯 말 듯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일 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 우리는 청주백화점에서 잠깐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죠. 얼마나 반갑던지...
백화점 앞 광장에서는 학생들이 기타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우리는 계단에 앉아 노래 소리에 한참을 취해 있었습니다.
잔잔한 포크송이 우리의 귀를 적셨으며 그것이 그녀와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스물일곱 되던 해에 난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할까 했지만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죠.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
남편의 고향은 전남 진도. 나의 고향은 대전
결혼식은 천안에서 했으며 친구에게 너무 먼 거리라 차마 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연락을 안했던 거죠.
결혼 후 나의 거취는 남편을 따라 서울로 옮겨졌습니다.
스무살 때 처음 와봤던 도시 서울.
이제 이 곳이 나의 고향이 될 차례인 것입니다.
새로운 도시로의 초대가 낯설기도 했지만 결혼이란 것 역시 늘 좋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차츰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소홀해졌습니다.
그렇게 일년쯤 연락이 끊어졌었고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이죠.
그러던 어느날인가 친구에게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고 다시 우리는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갑기는 했지만 웬일인지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몇 번인가 만날뻔도 했지만 우리의 만남은 늘 그랬듯 비껴갔습니다.
그리움의 깊이도 이제 세월의 두께와 함께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흔적일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추석이었죠.
그녀와 나의 만남이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목포에서 서울까지... 정말 멀다 멀다 그렇게 멀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차까지 밀리니... 하루 24시간은 길에서 보낸다고 마음 편하게 먹는 것이 상책이었죠.
가끔 티브에서 보던 귀성길이나 혹은 상경길의 그 길막히는 대열 속에 내가 있게 될줄은정말 몰랐죠.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었기에 명절을 무사하게 보내고 추석날 저녁 우리는 출발을 했습니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많이 밀리더군요.
다음날 저녁쯤 되어서 우리는 청주에 도착을 했습니다.
가로수가 예쁜 도시! 청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입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은숙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네요.
내 목소리를 듣자 마자 은숙이는 니 어디냐며 묻더군요. 청주라고 했죠.
청주??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은숙이는 일하고 있는 자기네 호텔로 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의향을 물으니 그러자고 하네요.
길을 몰라 물어 물어 찾아 갔습니다. 잠시후 로비에서 은숙이가 나왔고...
우리는 둘 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정말이지 딱 십 년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십 년. 십 년이었습니다.
편지로만 연락을 주고 받은지 딱 십년이었습니다.
은숙이는 상당히 말라 있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급기야 눈물을 흘리고 말았죠.
두 손을 꼭 잡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할 말이 너무나 많았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 우리는 애꿎은 커피만 마셨습니다.
뒤늦게 은숙이에게 남편을 소개해줬죠.
은숙이는 그냥 이렇게 보낼수 없다며 객실 하나를 예약해 놓고 있었습니다.
거절을 할 수가 없었죠.
은숙이는 연실 좀더 좋은 곳에 있을 때 찾아오지 왜 이제야 왔냐며 내내 미안해 했습니다.
열시가 되어가는 시간... 명절연휴라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몇 군데 허탕을 치고 가까스로 삼겹살집에 들어갔죠.
십 년전 그녀와 나 사이에는 맛좋은 음료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른을 넘은 나이였고 음료수 대신 술과 고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한잔씩 주고 받았죠. 얼마나 할말이 많았는지...
고기집에서 나왔을때는 이미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호프집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고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았던 것일까요?
울다가 웃다가 떠들다가... 남편은 옆에서 묵묵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너무 보기 좋다며... 은숙씨가 너무 따뜻하게 맞이해줘서
고맙다며... 그 말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영업 시간이 끝났다고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계속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호프집에서 나와 호텔로 향했습니다.
은숙이는 기숙사로 들어갔고 남편과 나는 은숙이가 잡아준 객실로 들어갔죠.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렇게 청주에서 추석은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난 피곤한 남편을 끌고 편의점으로 향했고 오두막 편지 라는 책을 한권 구입했습니다.
또다시 언제 만날지 모르는 형편이었으므로 친구에게 뭔가 작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던 것이죠.
맨 앞면에 은숙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옆에는 남편도 함께 필적을 남겼죠.
전라도로, 충청도로, 서울로... 은숙이는 욕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따라서 더 좋은 조건의 배울것이 많은 곳을 좇아 직장을 옮겨 다녔기에 만나기가 더 힘이 들었던 것이죠.
그리고 지난해 추석, 친구와 나의 십년만의 만남은 거의 극적인 것이었구요.
우리는 인생중에 스쳐가는 기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회사생활에서의 만남은 단순히 직장동료라는 이름아래 그 기간동안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데 가끔은 회사를 떠난 후 만나지 못하는 동료의 소중한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버팀목이 되어주고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동료들..
앞으로 살아가면서 새로운 만남의 의미를 느끼실겁니다.

은숙아! 우리 또 언제 만나니? 보고 싶다....... 내 친구 은숙아...... 건강해라....
안녕 *^^*